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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조선업을 '끝난 산업'처럼 여겼습니다.
수주 절벽, 구조조정, 적자라는 단어가 뉴스 헤드라인을 도배하던 시절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삼성중공업이 올해 상선 부문 연간 수주 목표를 5개월이나 앞서 달성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제가 가지고 있던 선입견이 꽤 많이 흔들렸습니다.

불황이라던 조선업, 분위기가 달라진 배경

제가 처음 조선업 관련 뉴스를 유심히 들여다본 건 2~3년 전쯤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국내 대형 조선사들이 저가 수주의 후폭풍으로 줄줄이 적자를 기록하던 시기였고, 업황 회복까지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산업의 사이클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돌아온다는 걸 느꼈습니다.

조선업이 회복세를 타기 시작한 데는 몇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큰 배경은 노후 선박 교체 수요와 함께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발주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입니다.
LNG운반선이란 영하 163도에서 액체 상태로 보관된 천연가스를 운반하는 특수 선박으로, 고도의 단열 기술과 정밀한 화물창 설계가 필요해 아무 조선소나 만들 수 없는 고난이도 선종입니다. 국내 조선사들이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기술력을 쌓아온 덕분에 글로벌 발주가 늘수록 수혜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이번에 삼성중공업이 계약을 체결한 원유운반선도 맥락이 비슷합니다.
원유운반선은 VLCC(초대형 원유운반선)를 중심으로 수요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며, 이번 계약 규모는 2척에 2,680억 원, 인도 시점은 2029년 8월까지입니다. 올해 상선 부문 누적 실적은 34척, 58억 달러로 연간 목표 57억 달러를 이미 넘어섰습니다(출처: 삼성중공업 공시).

수주 목표 초과가 반가운 이유, 그리고 놓치면 안 되는 포인트

제가 이번 뉴스에서 가장 눈여겨본 부분은 단순히 수주 물량이 늘었다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선종 구성이 고부가가치 선박 중심으로 짜여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올해 삼성중공업의 수주 내역을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됩니다.

  • LNG운반선 14척 (LNG-FSRU 1척 포함)
  • 에탄운반선 2척
  • 가스운반선 4척
  • 컨테이너운반선 2척
  • 원유운반선 12척

여기서 LNG-FSRU란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저장·재기화 설비를 의미합니다.
육지에 파이프라인을 깔기 어려운 지역에서 바다 위에 설치해 LNG를 다시 기체 상태로 전환하는 역할을 하는 선박으로, 일반 LNG운반선보다 훨씬 높은 기술력이 요구됩니다.

또 해양 부문에는 FLNG(부유식 LNG 생산설비) 2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FLNG란 해상에서 직접 가스를 채굴하고 액화까지 완료하는 복합 설비로, 단일 프로젝트 규모가 수조 원에 달하는 초대형 계약입니다.
이 두 건만 합산해도 전체 수주 금액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개인적으로 기업의 수주 내역을 볼 때, 저는 항상 '어떤 선박을 얼마에 받았는가'를 더 먼저 봅니다.
과거에 저가 수주 문제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게, 척수가 많아도 마진이 낮으면 오히려 손해가 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삼성중공업의 수주 구성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은 고부가가치 선박 중심의 선별 수주 전략을 통해 수익성 개선 흐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투자자 시각에서 수주 뉴스를 읽는 법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수주 목표 초과 달성이라는 소식 자체만으로 긍정적으로 해석했는데, 조금 더 들여다보니 반드시 짚어야 할 부분이 있었습니다.

수주와 실적은 완전히 다른 개념입니다. 선박은 계약 체결 이후 실제 건조와 인도까지 수년이 걸립니다.
이번 원유운반선도 인도 예정 시점이 2029년 8월이니, 매출로 반영되려면 3~4년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그 사이에 후판(선박에 사용되는 두꺼운 철판) 가격이나 인건비가 오르면 수주 당시 예상했던 영업이익률(OPM, Operating Profit Margin)이 낮아질 수 있습니다. OPM이란 매출 대비 영업이익의 비율로, 기업이 실제로 얼마나 남기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지표입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조선주를 볼 때 확인해야 할 핵심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수주잔고(백로그): 현재 계약된 물량이 향후 몇 년치 일감에 해당하는지
  • 영업이익률 추이: 수주 단가가 실제 수익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 원자재 및 환율 변동: 후판 가격과 달러 환율이 원가에 미치는 영향
  • 선별 수주 비율: 저마진 물량을 거르고 있는지 여부

제 경험상 이 네 가지를 같이 보면 수주 뉴스의 실질적인 의미가 훨씬 명확하게 보입니다.
좋은 수주 소식도 구체적인 맥락 없이는 절반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조선업이 고부가가치 선박 중심으로 체질을 바꾸고 있다는 방향성은 분명히 맞는 흐름입니다.
삼성중공업이 올해 상선 수주 가이던스를 조기 달성한 것도, 척수를 무조건 늘리기보다 수익성 높은 계약을 선별해온 결과라고 보입니다.
다만 수주 호조가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그 사이 변수도 적지 않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조선주에 관심이 있다면 수주 공시와 함께 분기별 영업이익률 흐름을 꼭 병행해서 살펴보시기를 권합니다.


참고: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1/0004647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