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를 마시면 보수, 안 마시면 진보"라는 말이 실제로 나오는 시대가 됐습니다.
솔직히 저도 처음 이 뉴스를 접했을 때 순간 '이게 진짜 현실인가' 싶었습니다.
기업의 마케팅 실수 하나가 며칠 만에 이념 대결의 상징으로 번지는 속도, 이번 스타벅스 사태는 그 민감함을 다시 한번 정확히 보여줬습니다.
사건의 출발점: 마케팅 실수인가, 역사 인식의 문제인가
지난 5월 18일, 스타벅스코리아는 텀블러 프로모션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문제는 그 이벤트에 사용된 문구였습니다. '탱크 데이', '책상에 탁'이라는 표현이 5·18 민주화운동과 1987년 고문치사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비판이 쏟아졌고, 온라인을 중심으로 불매운동이 급속도로 번졌습니다.
여기서 '역사적 감수성(historical sensitivity)'이라는 개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적 감수성이란 특정 사건이나 표현이 역사적 맥락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인식하고 배려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기업의 마케팅 부서가 이 감수성을 충분히 발휘했는지가 이번 논란의 핵심 출발점이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스타벅스의 실수가 명백했다고 봅니다. 5월 18일이라는 날짜, 그리고 해당 문구가 가진 역사적 연상 작용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습니다. 마케팅 의사결정 과정에서 역사적 맥락 검토 단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후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자신의 SNS를 통해 역사적 가치를 상업적 소재로 소비한 기업과의 거리두기를 선언했고, 국방부 역시 스타벅스와 진행하던 장병 복지 사업을 잠정 중단했습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도 전체 지부에 공문을 배포하며 이용 중단을 제안했습니다.
이른바 공공 영역에서의 집단적 불매 움직임이 가시화된 것입니다.
정치 프레임 전환: "자유 침해" vs "공공기관의 가치 판단"
그런데 이 시점부터 논란의 성격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이자 국민의힘 경기도 수원정 당협위원장은 수원시장 후보 지지 유세 현장에서 "스타벅스를 가라 마라라 아무도 명령할 수 없다"고 발언했습니다. 나경원 의원은 "민간 기업에 대한 집단 린치"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한기호 의원은 "스타벅스가 보수 애국민들의 아지트가 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발언들이 겨냥한 개념이 바로 '소비자 주권(consumer sovereignty)'입니다.
소비자 주권이란 자유시장 경제에서 소비자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상품을 선택하고 기업의 생존을 결정하는 권한을 갖는다는 원리입니다.
정치권이 특정 기업에 대한 소비를 사실상 권장하거나 금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이 원리에 반한다는 논리입니다.
저는 이 주장 자체가 완전히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불매운동은 소비자의 자유이지만, 동시에 그 기업을 계속 이용하는 것도 개인의 자유입니다.
그런데 이번 논란에서 제가 주목한 건 이 발언들의 시점과 맥락입니다. 유세차 위에서, 선거를 앞두고, 지지자들 앞에서 나온 말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슈 프레이밍(issue framing)'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슈 프레이밍이란 동일한 사안을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고 제시하느냐에 따라 여론의 방향이 달라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보수 진영은 '자유 대 통제'라는 프레임을 씌워 논란을 재구성했고, 이로 인해 원래 핵심이었던 역사 인식 문제는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논란에서 정치권이 활용한 주요 프레이밍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보수 진영 프레임: "정부 권력이 민간 기업을 압박하는 자유 침해 사례"
- 진보 진영 프레임: "역사를 희화화한 기업과 공공기관이 거리를 두는 당연한 가치 판단"
- 중립적 시각: "마케팅 실수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정치적 진영 싸움으로 변질"
정치적 양극화의 구조와 앞으로의 전망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사건 초기만 해도 이 정도로 빠르게 이념 대결의 상징이 될 거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 즉 기업 이슈가 단기간에 정치 진영의 충성 경쟁으로 전환되는 패턴은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를 학문적으로는 '정치적 양극화(political polarization)'라고 부릅니다.
정치적 양극화란 사회 내 두 진영이 서로의 입장에 대해 적대적으로 분리되는 현상으로, 중립적 사안까지 진영 논리에 의해 재해석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퓨 리서치 센터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정치적 양극화 심화가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신뢰 하락과 직결된다는 분석 결과가 제시된 바 있습니다. (출처: Pew Research Center).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발표한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념 갈등이 한국 사회의 주요 갈등 요인 1위로 꾸준히 꼽히고 있습니다.
(출처: 한국행정연구원). 이번 스타벅스 사태는 그 통계가 실생활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더 우려하는 건 이 프레임 전환이 진짜 피해자를 만든다는 점입니다.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들과 유가족의 입장에서, 이 사안이 "스타벅스를 마실 자유" 논쟁으로 귀결되는 모습이 어떻게 느껴질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 감수성의 문제를 정치 진영의 결집 수단으로 소비하는 구조 자체가 문제입니다.
결국 이번 사태가 남긴 질문은 하나입니다. 기업은 역사적 맥락에 더 신중해야 하고, 정치권은 사회적 논란을 진영 결집의 도구로 쓰는 것을 자제해야 합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특정 브랜드를 선택하거나 거부하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일입니다.
그 선택에 이념의 색깔을 칠하는 순간, 우리 모두는 조금씩 더 피곤해집니다. 이번 논란을 보면서 저는 그 피로감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