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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 근처 공단 인근을 지나다가 베트남어로 가득 찬 간판을 처음 봤을 때, 잠깐 다른 동네에 온 줄 알았습니다.
서울 이태원이나 안산 원곡동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 왜 여기에 있는 건지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이건 일부 지역의 특수한 현상이 아니었습니다.
외국인 근로자 수가 가파르게 늘면서 지방 중소도시와 농촌까지 상권 지형이 바뀌고 있는, 지금 한국 곳곳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는 변화였습니다.

공단과 농촌에서 시작된 상권 변화의 배경
제가 처음 이 변화를 체감한 건 공단 쪽 원룸촌을 지나다가 환전소와 국제송금 서비스 간판을 연달아 보게 되면서였습니다.
단순히 식당 하나 생긴 게 아니라, 하나의 생활권이 통째로 이식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숫자가 있습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278만 3,247명으로 전년 대비 5.0% 증가했습니다(출처: 법무부).
이 중 취업 자격으로 체류하는 외국인은 59만 4,047명이며, 제조업·농축산업 등에 종사하는 단순기능인력만 48만 6,413명에 달합니다.
단순기능인력이란 전문 자격이 아닌 비숙련·반숙련 업무에 종사하는 외국인 근로자를 뜻하며, 공장 생산직이나 농어촌 현장 인력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들이 장기 체류로 전환되면서 소비 패턴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주말마다 안산 원곡동 같은 다문화 특구로 이동해 고향 음식을 먹었지만, 수요가 일정 규모를 넘어서자 공장 근처에 자국 식당과 식재료점이 직접 들어서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경남 김해시 동상동의 경우 베트남, 태국, 우즈베키스탄 등 아시아 각국의 음식점과 식재료점이 밀집한 이른바 '글로벌 푸드타운'으로 변한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농촌 지역에서는 계절근로자 제도가 이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계절근로자 제도란 농번기에 단기 인력을 외국에서 초청하는 비자 제도로,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매년 반복 방문 형태로 운영됩니다.
과거에는 농가가 숙식을 제공해 외부 소비가 거의 없었지만, 도입 규모가 커지고 체류 기간이 길어지면서 읍내 편의점과 식료품점을 이용하는 수요가 눈에 띄게 늘고 있습니다.
다국적 상권의 구조 — 식당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제가 공단 인근을 직접 걸어보면서 느낀 건, 외국인 상권이 단순히 음식점 몇 개 생기는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식당 → 식재료점 → 환전소 → 국제송금업체 → 휴대전화 대리점으로 이어지는 연쇄적인 상권 클러스터가 형성됩니다. 클러스터란 특정 산업이나 서비스가 한 지역에 집적되어 서로 연관 관계를 형성하는 구조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하나의 수요가 생기면 그것을 뒷받침하는 연관 서비스가 연달아 따라붙는 구조입니다.
이 구조가 작동하는 방식을 지역별로 보면 특징이 뚜렷합니다.
- 제조업 밀집 지역(경기 화성·평택·시흥, 충북 음성·진천, 충남 아산·천안): 무슬림 근로자를 위한 할랄 인증 식당, 중앙아시아식 양고기 전문점, 베트남식 노래방 복합 운영 점포 등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할랄이란 이슬람 율법에 따라 허용된 식품 및 제조 방식을 의미하며, 돼지고기를 사용하지 않고 별도의 도축 절차를 거친 육류만 사용합니다.
- 농촌 지역(진천군 등 지자체): 계절근로자 반복 방문이 늘면서 읍내 소비 상권이 서서히 형성되고 있습니다.
- 복합 확산 지역(김해 외동 등): 기존 외국인 거리에서 벗어나 폐업한 한국 음식점 자리에 베트남·태국 식당이 들어서는 방식으로 인근 지역으로 외연을 넓히고 있습니다.
매출 구조도 일반 식당과 다릅니다. 평일 저녁과 공장 휴무일인 주말에 매출이 집중되고, 주 고객이 같은 국적의 근로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이른바 에스닉 마켓(ethnic market), 즉 특정 민족 또는 국적 집단을 주 타깃으로 하는 소비 시장이 지방 중소도시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의 월평균 국내 소비 지출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들이 새로운 내수 소비층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출처: 통계청).
제가 보기에도 이건 단순한 식문화의 변화가 아니라, 지방 상권이 오랫동안 겪어온 인구 감소와 소비 위축 문제에 대한 예상치 못한 돌파구로 작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상권 활성화 이면의 과제 — 지속 가능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상권이 살아난다는 건 분명 반가운 일입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식당 간판이 바뀌는 속도보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실제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는 속도가 훨씬 느리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지역 경제의 소비 주체로 기능하려면 몇 가지 기반이 함께 마련되어야 합니다.
- 주거 환경: 공단 인근 원룸촌은 노후화된 경우가 많고, 과밀 거주 문제가 종종 보고됩니다.
- 의료 접근성: 언어 장벽으로 인해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사례가 여전히 존재합니다.
- 노동권 보호: 비자 상태에 따른 취약성 때문에 임금 체불이나 부당 대우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 지역사회 통합 프로그램: 문화 차이로 인한 주민 갈등을 예방하기 위한 쌍방향 이해 교육이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외국인 근로자 증가를 상권 활성화 측면에서만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이 시각이 다소 아쉽습니다.
이들이 지역사회의 일시적인 소비층이 아니라 구성원으로 자리 잡으려면, 지자체 차원의 사회통합 정책이 상권 변화 속도에 발맞춰 함께 진행되어야 합니다.
다문화 수용성(multicultural acceptability)이란 개념도 여기서 중요해집니다.
이는 단순히 외국 음식을 먹거나 외국인과 같은 공간에 있는 수준을 넘어,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사회적 태도를 의미합니다. 상권의 다국적화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남은 건 그 변화가 피상적인 소비 다양화로 끝나지 않도록 사회적 기반을 함께 쌓아가는 일입니다.
지방 상권의 다국적화는 인구 감소 시대에 지역 경제가 스스로 찾아낸 새로운 생존 방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외국인 근로자를 값싼 노동력 또는 반가운 소비자로만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이 변화는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지역 주민과 외국인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 그 기반을 만드는 것이 진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주변에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면, 그 간판 뒤에 어떤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한 번쯤 들여다볼 것을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