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오면 당연히 전국에 비가 내린다고 생각하셨나요?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태풍 장미가 북상하는 지금, 제주와 부산은 폭우 대비를 하는 동안 서울은 폭염 경보가 내려지는 상황을 보고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같은 날, 같은 나라인데 한쪽은 침수를 걱정하고 다른 쪽은 열사병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기후 변화를 새삼 실감하게 만들었습니다.
태풍이 왔는데 왜 서울은 더 더워질까
매년 겪는 일지지만 이런 상황이 낯설게 느껴졌는데, 기상학적으로는 충분히 설명 가능한 현상입니다.
이번 태풍 장미는 오키나와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이동 중인데, 이 경로가 북태평양 고기압과 맞물리면서 한반도로 뜨겁고 습한 공기를 끌어들이는 바람 길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여기서 기압골이란 기압이 낮은 지역을 연결한 선으로, 비구름대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기압골이 남부와 제주 방향으로 통과하면서 해당 지역에는 집중호우가 예상되는 반면, 중부 지역은 기압골의 영향권 밖에서 고온다습한 공기만 유입되는 구조입니다.
그 결과 기상청이 발표한 강수량 예보는 지역별로 뚜렷하게 나뉩니다.
- 제주: 30~120mm
- 부산·울산: 20~60mm
- 경남·광주·전남: 5~30mm
- 대구·경북·전북: 5~10mm
제가 이 수치를 보면서 놀란 건, 제주가 최대 120mm라는 점이었습니다.
이는 짧은 시간에 집중될 경우 하천 범람이나 도심 침수로 이어질 수 있는 양입니다.
실제로 과거 제주에서 단시간 강우가 집중될 때 저지대 침수 피해가 반복됐던 사례를 떠올리면 결코 가볍게 볼 수치가 아닙니다([출처: 기상청](https://www.weather.go.kr)).
고온다습한 공기가 몸에 미치는 영향
태풍 시즌에 중부 지역 거주자들이 체감하는 것은 단순한 더위가 아닙니다.
고온다습한 공기가 유입될 때 문제가 되는 건 체감온도(Apparent Temperature)입니다.
체감온도란 기온과 습도, 바람의 영향을 종합해 사람이 실제로 느끼는 온도를 수치화한 것으로, 습도가 높을수록 같은 기온에서도 훨씬 더 덥게 느껴집니다.
제가 올여름 직접 겪어본 경험으로는, 기온이 33도라도 습도가 80%를 넘어가면 체감온도는 40도에 육박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피부에서 땀이 증발하지 않으면서 체온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는 느낌이 확연히 달랐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열사병(Heat Stroke)입니다.
열사병이란 체온 조절 기능이 무너져 체온이 40도 이상으로 치솟는 응급 상태로, 적절한 처치 없이는 사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노약자, 어린이, 야외 근로자가 특히 취약한데,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온열질환 환자의 상당수가 바로 이 고온다습 환경에 장시간 노출되는 경우에 발생합니다.
([출처: 질병관리청](https://www.kdca.go.kr)).
이번처럼 태풍 북상과 동시에 습도가 치솟는 날씨는 단순한 여름 더위와는 결이 다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태풍이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불쾌지수가 올라가고 건강 위협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많은 분들이 간과하는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매년 반복되는데 왜 피해는 줄지 않는가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태풍과 집중호우 예보가 나올 때마다 언론은 대비를 촉구하고, 지자체는 배수로 점검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막상 비가 쏟아지면 같은 자리에서 같은 피해가 반복됩니다.
문제는 재난 대비 의식만이 아닙니다. 도심 침수의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는 불투수층(Impervious Surface) 비율입니다. 불투수층이란 콘크리트, 아스팔트 등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 못하게 막는 표면을 말합니다.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불투수층 비율이 높아지고, 강우 시 지표 유출량이 급증해 배수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립니다.
기후 변화로 단시간 강우 강도가 세지는 상황에서 노후화된 배수 인프라는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폭염 대응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무더위 쉼터 확대나 취약계층 보호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제가 실제로 확인해보니 지역별 편차가 상당했습니다.
서울 도심에서는 냉방 시설이 잘 갖춰진 쉼터를 찾는 게 어렵지 않지만, 농촌 지역이나 외곽에서는 접근성 자체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태풍 장미가 이번에 큰 피해 없이 지나가길 바라지만, 이번 상황을 계기로 짚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 노후 배수 인프라 교체 및 투수 포장재 도입 확대
- 온열질환 취약계층을 위한 지역 밀착형 대응 체계 강화
- 기상 특보 발령 전 선제적 주민 대피·대비 안내 시스템 구축
매년 반복되는 피해를 보면 자연재해 자체보다 대비 부족으로 인한 손실이 더 크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일회성 대응이 아닌 장기적인 기후 적응(Climate Adaptation) 전략, 즉 변화하는 기후 조건에 맞게 사회 인프라와 제도 전체를 체계적으로 개편하는 접근이 지금보다 훨씬 더 빠르게 이루어져야 할 시점입니다.
태풍 장미는 결국 지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 날씨가 앞으로 더 잦아질 것이라는 전망은 바뀌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상청 특보를 수시로 확인하고, 침수 우려 지역 주민이라면 배수로 상태와 대피 경로를 미리 파악해두는 것, 그리고 폭염이 예보된 지역이라면 야외 활동을 최소화하고 수분을 충분히 보충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대비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기상·의학 조언을 대체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