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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만 해도 "국산차는 가격이 장점"이라는 말이 당연하게 통했습니다. 저도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 중 하나였고요. 그런데 최근 미국 유력 자동차 매체 카버즈가 현대차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를 시승하면서 "10만 달러가 넘는 럭셔리 SUV와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다"는 평가를 내놓은 기사를 읽고, 잠깐 멈춰서 다시 읽었습니다. 1억 원을 훌쩍 넘는 차와 비교되는 국산차라는 게 아직도 실감이 잘 안 납니다.

브랜드 격차: 숫자로 증명된 변화
제가 처음 자동차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 국산차와 수입차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선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승차감, 정숙성, 실내 소재의 고급감. 가격 차이가 상당함에도 사람들이 수입 럭셔리 브랜드를 고집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고, 실제로 직접 타봤을 때도 어느 정도는 느껴지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이야기를 하기가 좀 어색해졌습니다. 이번에 카버즈가 근거로 제시한 자료가 꽤 인상적이었는데, 바로 J.D. 파워의 APEAL 조사 결과였습니다. APEAL이란 'Automotive Performance, Execution and Layout'의 약자로, 쉽게 말해 신차를 구매한 실제 소비자가 디자인·성능·편의성·기술 등 자동차 전반에서 느끼는 만족도를 수치화한 조사입니다(출처: J.D. Power). 제조사 홍보 자료가 아니라 실제 구매자의 목소리를 모은 것이니 무게감이 다릅니다.
이 조사에서 제네시스는 최근 5년간 869~886점을 기록하며, 여러 해에 걸쳐 메르세데스-벤츠, 렉서스, 아우디, 볼보, 인피니티를 앞질렀습니다. 카버즈는 제네시스를 "더 이상 추격자가 아니라 럭셔리 시장의 최상위권에 확고히 자리 잡은 브랜드"라고 표현했습니다. 현대차는 858점으로 렉서스와 12점, 벤츠와 18점 차이에 그쳤고, 기아는 857점으로 볼보와 고작 6점 차이였습니다. 일부 연도에는 현대차·기아가 아우디와 인피니티보다 높은 점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는 이 수치가 "팰리세이드가 이제 벤츠와 똑같다"는 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자동차의 가치에는 잔존가치, 브랜드 희소성, 소재의 질감, 딜러 서비스 경험까지 포함되고, 오랜 역사를 가진 럭셔리 브랜드가 쌓아온 이미지는 APEAL 점수 몇 점으로 단순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상품성"이라는 기준만 놓고 봤을 때, 이제 국산차가 가격이 아닌 자동차 그 자체로 비교되기 시작했다는 점은 분명히 달라진 부분입니다.
- 제네시스 APEAL 점수(869~886점): 5년 연속 벤츠·렉서스·아우디 등 상회
- 현대차 858점: 렉서스와 12점, 벤츠와 18점 차이
- 기아 857점: 볼보와 격차 단 6점
-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 미국 시승 평가에서 10만 달러급 럭셔리 SUV와 승차감·정숙성 동급 평가
하이브리드 전략: 진짜 경쟁력은 여기서 나왔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기사에서 제가 가장 눈길이 오래 머문 숫자는 "벤츠와 18점 차이"가 아니라, 하이브리드 판매량 65.5% 급증이었습니다.
카버즈 보도에 따르면 현대차·기아의 2026년 상반기 미국 시장 판매량은 92만 383대로 전년 대비 3% 증가하며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이 가운데 하이브리드 차량 판매량은 22만 5,321대로, 전년 동기 대비 65.5% 급증한 수치입니다(출처: CarBuzz). 같은 기간 전기차 수요 둔화로 어려움을 겪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대비되는 결과입니다.
여기서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이란, 내연기관 엔진과 전기모터를 함께 사용해 연비와 주행 효율을 동시에 높이는 구동 방식을 말합니다. 전기차처럼 별도 충전 인프라 없이도 연료비를 절감할 수 있어, 충전 인프라가 아직 불균형한 미국 시장에서 특히 현실적인 선택지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전기차에 올인하다 수요 둔화에 직격탄을 맞은 경쟁사들의 흐름을 보면, 결국 소비자가 원하는 타이밍에 원하는 파워트레인을 내놓는 것이 기술력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대차그룹이 하이브리드·전기차·내연기관차를 동시에 가져가는 멀티 파워트레인 전략은, 지금 이 시점에서 보면 상당히 영리한 포지셔닝으로 보입니다.
경쟁사인 토요타의 지난달 미국 판매량이 전년 대비 4.4% 감소하는 동안, 현대차·기아는 0.6% 감소에 그치며 시장 침체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선방했습니다. 하이브리드 라인업이 전체 판매 성장의 핵심 동력이 됐다는 카버즈의 평가가 단순한 수식어가 아닌 이유입니다.
제조 경쟁력: 좋은 차를 싸게 만드는 구조
상품성이 좋아졌다는 평가는 결국 "그걸 얼마나 오래, 얼마나 많이, 얼마나 싸게 만들 수 있느냐"와 연결되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신차 한두 대로 화제가 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품질을 수십만 대 규모로 유지하면서 가격 경쟁력까지 가져가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카버즈가 현대차그룹의 경쟁력 배경으로 꼽은 두 가지가 저는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AI 기반 로보틱스와 생산 자동화입니다. 현대차그룹은 보스턴 다이내믹스와 함께 생산 공정의 효율성과 유연성을 높이는 전략을 추진 중입니다. 여기서 생산 자동화란 단순히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공정 전반을 실시간으로 최적화해 불량률을 낮추고 생산 속도를 높이는 방식을 말합니다.
두 번째는 자체 철강 생산 역량입니다. 자동차 제조에서 원자재 가격 변동은 수익성에 직접 영향을 미칩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제철을 통해 자체적으로 철강을 조달할 수 있는 수직계열화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수직계열화란 원자재 조달부터 완성차 생산까지 공급망의 주요 단계를 그룹 내에서 직접 통제하는 방식으로, 원가 변동성을 줄이고 안정적인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유리합니다.
제가 직접 공장을 돌아본 것은 아니지만, 이런 제조 인프라의 차이가 장기적으로 "비슷한 상품성을 더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다만 앞으로 현대차그룹이 해결해야 할 숙제도 있습니다. 상품성이 높아질수록 가격도 함께 오르는 경향이 있고, 실제로 최근 현대차·기아의 가격대가 과거보다 많이 올라온 것도 사실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느끼는 '국산차의 가격 경쟁력'이 흐려지지 않으려면, 제조 효율화를 통한 원가 관리가 단순한 투자 계획이 아니라 실제 판매 가격으로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가 정말 벤츠 SUV랑 비교할 수준인가요?
A. 카버즈의 시승 평가 기준은 승차감과 정숙성이었습니다. 이 두 항목에서만큼은 10만 달러 이상의 럭셔리 SUV와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다는 게 해당 매체의 표현입니다. 다만 브랜드 이미지, 소재 고급감, 중고차 잔존가치 같은 요소까지 포함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저는 "일부 항목에서 비슷해졌다"와 "전체적으로 동급"은 다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Q. J.D. 파워 APEAL 조사가 뭔가요? 믿을 만한 자료인가요?
A. J.D. 파워의 APEAL 조사는 신차 구매 후 실제 소비자가 디자인·성능·편의성·기술 등 전반에 대해 느끼는 만족도를 점수화한 조사입니다. 제조사가 아닌 구매자의 목소리를 모은 것이어서 업계에서 공신력 있는 지표로 활용됩니다. 단, 이 역시 조사 방법론과 응답자 구성에 따라 한계가 있을 수 있으니 단독 지표보다는 여러 자료 중 하나로 보는 게 적절합니다.
Q. 현대차·기아 하이브리드가 미국에서 이렇게 많이 팔리는 이유가 뭔가요?
A. 미국은 아직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지역별로 편차가 크기 때문에, 충전 걱정 없이 연비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이 현실적인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여기에 현대차·기아가 SUV 위주의 라인업에서 폭넓은 하이브리드 모델을 갖춘 것이 맞아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전기차 수요 둔화 국면에서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일찍부터 확장한 게 결과적으로 좋은 타이밍이었다는 생각입니다.
Q. 제네시스가 진짜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요?
A. APEAL 점수와 미국 내 평가만 보면 상품성 면에서는 이미 최상위권에 올라섰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럭셔리 브랜드는 상품성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브랜드만의 확실한 세계관과 구매·서비스 경험, 그리고 시간이 쌓여야 생기는 역사적 이미지가 필요합니다. 지금 흐름이 계속된다면 가능성은 충분하지만, 아직은 "증명 중인 브랜드"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결론
이번 기사를 읽으면서 든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현대차그룹이 '가격이 저렴해서 사는 한국차' 단계에서는 확실히 벗어나고 있다는 것. 하지만 상품성 격차가 줄었다는 것과 브랜드 가치까지 따라잡았다는 것은 여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앞으로 현대차·기아·제네시스가 증명해야 할 것은 인상적인 신차 몇 대가 아니라, 이 수준의 상품성을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넓은 라인업에 걸쳐 유지하느냐입니다.
그리고 가격 경쟁력을 스스로 갉아먹지 않는 것도 숙제입니다. 제 경우엔 좋아진 국산차를 보면서 기쁜 마음과 동시에 "그런데 요즘 가격이 많이 올랐지"라는 생각이 동시에 드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지금과 같은 흐름이 계속된다면, 앞으로 자동차를 고를 때 '국산이냐 수입이냐'보다 '같은 돈으로 어떤 차가 더 나에게 맞느냐'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되는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