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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이 개발됐는데 보험이 안 된다면, 그 약은 없는 것과 다를까요? 저는 류마티스관절염 환자로서 이 질문이 단순한 수사가 아님을 압니다. 정부가 희귀질환 치료제의 건강보험 등재기간을 기존 240일에서 최대 100일로 줄이는 신속등재 시범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방향은 맞습니다. 하지만 세부 기준을 들여다보면 환자 입장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신속등재, 무엇이 달라지나 — 등재기간과 급여기준

저는 치료제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가장 먼저 '이 약, 보험 되나요?'를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희귀질환 환자에게 급여 여부는 치료를 받느냐 못 받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시범사업은 솔직히 반가웠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는 이번 시범사업은 희귀질환 산정특례 대상 적응증을 보유한 치료제의 건강보험 등재기간을 기존 240일에서 최대 100일 이내로 단축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여기서 '산정특례'란 희귀질환자가 진료비 본인부담률을 대폭 낮춰 적용받는 제도로, 경제적 부담을 줄여 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입니다.

등재기간이 140일이나 짧아진다는 것은 환자 입장에서 그만큼 빨리 제값에 약을 쓸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시범사업의 대상 선정 기준을 보면, 신약의 가격을 정하거나 건강보험 급여를 재평가할 때 기준으로 삼는 'A8 국가', 즉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위스·일본·캐나다 8개국 중 3개국 이상에서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된 품목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A8 국가'란 우리나라 약가 산정 시 비교 기준이 되는 주요 8개 선진국을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해외에서 이미 검증된 치료제를 빠르게 들여오겠다는 논리입니다.

이 접근법이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겁니다.

저도 해외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인된 치료제라면 국내 심사 기간을 줄일 여지가 있다는 점은 납득이 됩니다.

다만 문제는 이 기준이 '진입 요건'으로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 등재기간 단축: 240일 → 최대 100일 이내
  • 대상 요건: A8 국가 3개국 이상에서 건강보험 급여 적용 품목
  • 적용 범위: 희귀질환 산정특례 대상 적응증 보유 치료제
  • 모집 기간: 복지부, 참여 제약사 및 대상 품목 31일까지 모집
요약: 신속등재 시범사업은 등재기간을 140일 단축하는 긍정적 변화이지만, A8 국가 3개국 이상 급여를 진입 요건으로 삼는 방식이 제도의 실질적 범위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입니다.

 

해외 기준이 전부일까 — 한국형 평가의 필요성

제가 희귀질환 환자로서 가장 답답하게 느끼는 지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보험이 됩니까?'라는 질문이 국내 환자의 치료 필요성을 대신 말해줄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희귀질환은 국가와 인종에 따라 유병률, 즉 일정 시점에 인구 중 해당 질환을 가진 비율이 크게 다릅니다.

여기서 '유병률'이란 특정 집단 내에서 특정 질환을 가진 사람의 비율을 뜻하며, 희귀질환의 경우 이 수치가 나라마다 수십 배씩 차이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모야모야병입니다.

양측 뇌혈관 내벽이 두꺼워지면서 혈관이 막히는 이 희귀혈관질환은 한국·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서구권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유병률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질병관리청).

샤르코마리투스병(CMT)도 마찬가지입니다.

CMT란 말초신경이 서서히 손상되면서 손발 근육 위축과 변형, 감각 저하 등을 유발하는 유전성 희귀신경질환입니다.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환자 비중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 근본적인 치료제가 없는 상태입니다.

이런 질환에 치료제가 개발됐을 때, A8 국가에서 환자가 적어 급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국내 신속등재 대상에서 제외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해외 급여 여부를 참고자료로 활용하는 것과, 그것을 진입 요건으로 고정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해외에서 급여가 적용되지 않은 이유가 환자 규모가 너무 적어서인지, 해당 국가의 보험 제도 구조 때문인지, 약가 협상이 결렬된 것인지를 들여다보지 않고 결과만 보는 것은 미충족 의료수요를 놓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미충족 의료수요'란 환자에게 치료 필요성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현재 적절한 치료 수단이 없거나 접근이 어려운 상태를 가리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제도적 공백은 숫자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무섭습니다.

치료를 포기하거나 건강보험 적용 전 약값을 전액 부담하며 버티는 환자들의 이야기는 통계에 잡히지 않으니까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방향은 분명히 옳은데 기준 하나가 의도치 않게 어떤 환자들을 걸러낼 수 있다는 점이 이렇게 마음에 걸릴 줄 몰랐습니다.

업계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옵니다.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환자가 많이 발생하는 질환이나 국내에서 개발된 치료제의 경우, 해외 급여 사례가 충분하지 않더라도 국내 환자의 치료 필요성을 별도로 평가할 수 있는 맞춤형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A8 국가 기준을 완전히 버리자는 게 아니라, 국내 환자 데이터와 질환 특성을 바탕으로 독립적인 보완 평가 경로를 열어두자는 의미입니다. 제가 직접 이 문제를 들여다보면서 느낀 것도 정확히 그것입니다.

해외 기준을 빠르게 가져오는 것과, 국내 환자 현실에 맞는 기준을 선제적으로 마련하는 것은 전혀 다른 정책입니다.

요약: 해외 급여 여부를 진입 요건으로 고정하면 동아시아·한국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발생하는 희귀질환 환자가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으며, 국내 유병률과 미충족 의료수요를 반영한 한국형 평가 기준 마련이 필요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희귀질환 신속등재 시범사업, 언제부터 시행되나요?

A. 보건복지부는 이달 31일까지 참여 제약사와 대상 품목을 모집하고 있으며, 이후 시범사업이 본격 진행될 예정입니다.

기존 240일에서 최대 100일로 등재기간을 단축하는 것이 핵심 내용입니다.

구체적인 일정은 보건복지부 공식 발표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Q. A8 국가가 뭔가요? 왜 이게 기준이 되나요?

A. A8 국가란 우리나라가 약가를 산정하거나 급여를 재평가할 때 비교 기준으로 삼는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위스·일본·캐나다 8개 선진국을 말합니다.

이미 이들 국가에서 급여가 적용됐다면 안전성·효과·경제성을 어느 정도 검증받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기준으로 활용됩니다.

다만 이를 진입 요건으로 고정하면 국내 특유의 희귀질환 환자 상황을 놓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Q. 모야모야병이나 샤르코마리투스병(CMT)도 이번에 혜택을 받을 수 있나요?

A. 현재 두 질환 모두 근본적인 치료제가 없어 이번 시범사업의 직접 대상은 아닙니다.

다만 이들 질환은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유병률이 높은데도 서구권에서 환자가 적다는 이유로 해외 급여 사례가 부족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향후 치료제가 개발됐을 때 해외 급여 여부만으로 국내 접근성을 판단하는 기준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자주 언급됩니다.

 

Q. 신속등재가 된다고 해도 환자 본인 부담은 그대로 아닌가요?

A. 건강보험 등재 자체가 곧 급여 적용을 의미하므로, 등재가 되면 산정특례 대상 희귀질환자는 본인부담률이 대폭 낮아집니다.

등재 전까지는 약값 전액을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등재기간 단축은 환자의 경제적 부담 경감 시점을 앞당기는 실질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다만 약가 협상 결과에 따라 최종 본인부담액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결론

정리하면, 이번 희귀질환 치료제 신속등재 시범사업은 분명히 환자에게 의미 있는 변화입니다.

등재기간 240일이 100일로 줄어든다는 것은 환자가 140일을 더 일찍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고, 그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는 환자가 아니면 실감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치료제를 기다리는 시간은 숫자가 아니라 삶의 질로 느껴집니다.

다만 A8 국가 3개국 급여 여부를 진입 요건으로 고정하는 방식은 재검토할 여지가 있습니다.

해외 급여 사례를 참고자료로 활용하되, 국내 유병률과 미충족 의료수요를 독립적으로 평가하는 보완 경로를 함께 설계하는 방향이 더 타당하다고 봅니다. 신속등재라는 이름에 걸맞으려면 절차만 빠른 게 아니라 정작 필요한 환자에게도 빠르게 닿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범사업이 한국형 희귀질환 급여체계를 만들어가는 첫걸음이 되길 바랍니다.

참고: https://n.news.naver.com/article/648/0000049885?cds=news_media_pc&type=edi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