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북중미 월드컵 32강전이 끝났습니다. 48개국 사상 최대 규모로 치러진 이번 대회에서 살아남은 팀은 단 16개. 저도 조별리그부터 거의 모든 경기를 챙겨봤는데, 솔직히 이번 토너먼트만큼 끝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대회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를 보면서 느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유럽·남미 7강, 빅매치 대진표가 완성됐다
32강을 통과한 16개 팀의 면면을 보면, 유럽 7개국과 남미 4개국이 전체 자리의 70% 가까이를 차지했습니다.
프랑스, 잉글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노르웨이, 벨기에, 스위스가 유럽에서,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를 포함해 브라질, 콜롬비아, 파라과이가 남미에서 생존했습니다. 공동 개최국인 미국, 멕시코, 캐나다도 모두 16강에 올랐고, 아프리카에서는 이집트와 모로코가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번 16강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진은 단연 스페인 대 포르투갈입니다.
7일 오전 4시 댈러스에서 열리는 이 경기는 이른바 이베리아 더비(Iberian Derby)로, 같은 이베리아 반도 국가끼리 맞붙는 숙명의 대결을 뜻합니다. 제가 직접 두 팀의 32강 경기를 지켜봤는데, 스페인은 특유의 점유율 축구인 티키타카(Tiki-taka) 전술을 여전히 구사하고 있었습니다.
티키타카란 짧은 패스를 연속으로 이어가며 볼 점유율을 높이는 전술로, 상대를 지치게 만드는 데 특히 효과적입니다. 이에 맞설 포르투갈이 어떤 수비 블록을 형성할지가 이 경기의 핵심 변수로 보입니다.
6일 브라질과 노르웨이의 대결도 놓칠 수 없습니다. 노르웨이의 엘링 홀란은 이번 대회에서 5골을 터뜨리며 득점 경쟁 상위권을 달리고 있습니다. 브라질의 비니시우스 주니오르 역시 4골로 바짝 뒤를 추격하는 상황이라 공격 대 공격의 색채가 짙은 경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득점왕 레이스도 볼거리입니다. 현재 득점 순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리오넬 메시 (아르헨티나) — 7골
- 킬리안 음바페 (프랑스) — 6골
- 엘링 홀란 (노르웨이) — 5골
- 해리 케인 (잉글랜드) — 5골
- 우스만 뎀벨레 (프랑스), 미켈 오야르사발 (스페인), 비니시우스 주니오르 (브라질) — 각 4골
주목할 점은 이 7명이 모두 16강 무대를 밟았다는 사실입니다.
득점왕인 골든부트(Golden Boot)란 대회 전체 최다 득점자에게 주어지는 개인 부문 최고 상을 뜻하는데, 16강 이후부터는 한 경기에서 골을 넣을수록 다음 경기가 보장되는 구조라 경쟁이 더 치열해집니다. 제가 경기를 보면서 느낀 건, 메시는 나이가 들수록 오히려 경기를 읽는 시야가 더 정교해졌다는 점입니다.
단순 득점보다 어시스트와 공간 창출에서 팀 전체를 조율하는 능력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32강에서 첫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은 카보베르데에 연장전까지 끌려가는 아찔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디펜딩 챔피언답지 않은 경기력이었는데, 저는 이 장면에서 오히려 48개국 체제가 만들어낸 긴장감을 실감했습니다.
FIFA(국제축구연맹)가 본선 참가국을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확대한 이번 대회 방식이 처음 발표됐을 때만 해도 "약팀이 많아져서 경기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는데,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출처: FIFA 공식 사이트).
아시아 전멸이 드러낸 유소년 시스템의 민낯
솔직히 가장 마음이 무거운 부분은 여기입니다. AFC(아시아축구연맹) 소속 9개국이 출전했지만, 32강에 오른 일본과 호주마저 각각 브라질과 이집트에 패하면서 아시아 국가는 단 한 팀도 16강에 들지 못했습니다. AFC란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지역의 축구를 관할하는 연맹으로, 이번 대회에 가장 많은 9개국을 출전시켰음에도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제가 직접 일본 대 브라질 경기를 봤는데, 전술 이해도나 압박 강도는 예전보다 훨씬 높아졌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의 마무리 능력과 후반 체력 저하가 아직도 뚜렷했습니다. 이건 선수 한두 명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른바 선수층의 깊이를 의미하는 스쿼드 뎁스(Squad Depth)가 세계 강팀과 비교해 아직 한참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스쿼드 뎁스란 주전 선수가 부상이나 경고 누적으로 빠졌을 때 동급 이상의 선수로 대체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유럽 리그에서 활약하는 아시아 선수는 분명 늘었습니다. 그런데 월드컵이라는 극한의 토너먼트에서 경기 운영 능력과 세트피스(Set-piece) 대응 능력은 아직 세계 상위권에 못 미쳤습니다. 세트피스란 코너킥, 프리킥, 스로인 등 경기가 멈췄다 재개될 때 주어지는 상황을 통칭하는 용어로, 현대 축구에서 전체 득점의 3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중요한 영역입니다(출처: UEFA 기술보고서).
제가 보기에 아시아 축구가 진짜 도약하려면 단기적인 감독 교체나 전술 조정에 기댈 게 아니라, 유소년 단계부터의 체계적인 육성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선수를 발굴하고 키우는 구조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다음 대회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조별리그 탈락으로 끝난 이번 성적은 냉정한 반성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번 대회는 전통적인 유소년 시스템과 리그 경쟁력이 축적된 나라들이 결과로 증명한 대회였습니다.
48개국 체제로 출전 기회는 더 넓어졌지만, 그 기회를 실력으로 바꾸는 데는 수십 년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남은 16강부터는 한 경기 한 경기가 진짜 강자들의 경기입니다. 스페인 대 포르투갈, 브라질 대 노르웨이처럼 어느 쪽이 이겨도 납득이 가는 빅매치가 연달아 예정된 만큼, 축구팬이라면 일정표를 미리 챙겨두시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