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점 장면이 터졌는데 마음껏 기뻐하지 못하고 TV 화면만 멍하니 쳐다본 경험, 한 번쯤 있으시죠. 저도 이번 미국-파라과이전을 보다가 딱 그 상황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득점이 아니라 카드 판정이 뒤집혔습니다.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VAR이 경고 대상 선수 자체를 바꿔버린 장면이 나왔고, 새로운 규정들도 줄줄이 첫 적용 사례를 만들어냈습니다.
VAR 선수 오인 번복, 왜 이번이 최초인가
후반 5분, 미국이 3-0으로 앞서던 상황에서 수비수 팀 리암이 미겔 알미론에게 태클을 시도했습니다.
주심은 프리킥을 선언하고 리암에게 옐로카드를 꺼냈습니다. 여기까지는 흔한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프리킥이 이미 진행된 이후, 주심 대니 마켈리가 VAR 신호를 받고 모니터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결론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리암의 경고를 취소하고, 오히려 시뮬레이션을 시도한 알미론에게 카드를 줬습니다.
여기서 시뮬레이션(Simulation)이란 실제로 파울을 당하지 않았는데 넘어지거나 고통을 과장하여 심판을 속이는 행위를 말합니다.
흔히 '다이빙'이라고도 부르며, 피파(FIFA) 규정상 반스포츠적 행위로 경고 대상입니다.
이 판정이 왜 역사적이냐면, 지금까지 VAR은 득점 취소, 페널티킥 선언, 퇴장 여부 확인 등에 주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경고를 받는 선수 자체가 바뀐 사례는 월드컵 역사에서 처음이었습니다. 전 웨일스 국가대표 수비수 애슐리 윌리엄스도 "프리킥을 차게 놔둔 건 기이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옳은 결정이었다"고 평했는데, 저 역시 보면서 '이게 가능한 거였나?' 싶었습니다. 규정을 알고 봐도 실제로 눈앞에서 벌어지니 낯설었습니다.
2026 월드컵이 바꾼 VAR 적용 범위
이번 대회에서 FIFA는 VAR 활용 범위를 상당히 넓혔습니다. 단순히 골 취소나 페널티킥 판정에 그치지 않고, 이번처럼 선수 오인 정정까지 가능하도록 규정을 개정한 것입니다.
2026 월드컵에서 VAR이 개입할 수 있는 주요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득점 장면의 오프사이드·파울 여부 확인
- 페널티킥 선언 또는 취소
- 직접 퇴장(레드카드) 대상 확인
- 경고 누적 퇴장 시 두 번째 경고 상황 재확인
- 코너킥 판정 정정
- 이번처럼 선수 오인에 의한 카드 대상 변경
VAR(Video Assistant Referee)이란 경기장 밖 별도 부스에서 다수의 카메라 화면을 실시간으로 검토하는 비디오 보조 심판 시스템을 말합니다.
주심이 명백한 오심을 범했을 때 개입하는 방식으로,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처음 도입되었습니다(출처: FIFA).
개인적으로 이 확대 적용은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다만 걱정도 없지 않습니다.
VAR 개입이 잦아질수록 경기 흐름이 자주 끊기고, 팬들이 환호를 참아야 하는 순간도 그만큼 늘어납니다.
공정성을 높이는 것과 경기의 리듬을 지키는 것,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잡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이번 대회를 보면서 다시 느꼈습니다.
5초 룰과 8초 룰, 침대축구에 선전포고
이번 대회에서 제가 가장 흥미롭게 지켜본 변화는 사실 VAR보다 이 타임 제한 규정들이었습니다.
캐나다-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전에서 세아드 콜라시나츠가 스로인을 질질 끌다가 공격권을 빼앗기는 장면, 보면서 '이게 실제로 적용되네' 싶어서 순간 화면을 다시 돌려봤습니다.
스로인 5초 룰이란 선수가 터치라인 밖에서 스로인(throw-in)을 시도할 때 심판이 카운트를 시작한 뒤 5초 이내에 공을 던져야 한다는 규정입니다. 5초가 지나도록 공을 처리하지 않으면 소유권이 상대팀으로 넘어갑니다.
여기에 골키퍼 8초 룰도 함께 강화됐습니다. 골키퍼 8초 룰이란 골키퍼가 손으로 공을 잡은 뒤 8초 이내에 공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규정으로, 의도적인 시간 지연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기존에도 유사한 규정이 있었지만 유명무실하게 운영된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 대회에서는 실제 집행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침대축구, 즉 의도적인 시간 끌기 전술은 리드를 지키는 팀이 즐겨 쓰는 전략이지만 팬 입장에서는 경기 집중도를 확 떨어뜨리는 요소입니다.
국제축구평의회(IFAB)는 이 문제를 오랫동안 논의해왔고, 이번 시즌부터 구체적인 제재 수단을 마련한 것입니다.
(출처: IFAB
새 규정이 가져올 득과 실, 균형이 관건
솔직히 이번 새 규정들을 보면서 제가 느낀 건 '방향은 맞는데, 기준이 문제'라는 점이었습니다.
스로인 5초 룰 하나만 봐도, 어디서부터 카운트가 시작되는지, 선수가 공을 찾는 시간은 포함되는지, 심판마다 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VAR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시뮬레이션 판정은 주관적 요소가 강합니다.
같은 장면을 두고도 심판마다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고, 이번처럼 경고 대상이 완전히 바뀌는 상황이 토너먼트 결승전에서 나온다면 후폭풍이 상당할 것입니다. 제 경험상 규정이 강화될수록 초반에는 항상 적용 기준을 둘러싼 잡음이 따라옵니다. 이번 대회도 예외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방향 자체에는 동의합니다. 오심을 바로잡고, 시간 끌기를 막는 것은 경기의 순수성을 지키는 일이니까요.
다만 FIFA가 이 규정들을 정착시키려면 심판 교육과 기준 통일에 훨씬 더 공을 들여야 합니다.
팬들이 납득할 수 있는 일관성 없이는 새 규정이 오히려 더 큰 불신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번 2026 월드컵은 규정 변화의 실험장이 됐습니다. 대회가 끝날 즈음에는 이 규정들이 축구를 더 공정하게 만들었는지, 아니면 새로운 논쟁거리만 남겼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조별리그가 진행되는 동안 이 부분을 계속 지켜볼 생각입니다.
축구를 좋아하신다면 판정 장면 하나하나를 그냥 넘기지 말고, 어떤 규정이 적용됐는지 함께 확인해보시길 권합니다. 보는 재미가 꽤 달라집니다.